한국의섬 유튜브 채널 활동 시작하다.

개인서버를 두고 지난 25년간 한국의섬 KOREAiSLAND.com 운영과 각종 SNS 활동을 하면서도 유튜브(2013년 가입) 활동하지 않았으나 오늘 부터 한국전력공사가 운영하는 전국65개 섬발전소 노동자 부당 해고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 관련 영상 올려 봅니다.

한국의섬 korea island 유튜브 채널주소 https://youtube.com/@koreaisland9359

또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도서전력지부 노조원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실천 행동으로 경찰서에 옥외 집회신고를 하여 섬 발전소 노동자 부당해고에 대한 지역민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조도면 도서여객선 (2024년 하계철) 변경

★ 본 안내는 한국의섬( KOREAiSLAND.com )에서 어느 특정인만을 위해서 안내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정보 제공을 위해서 각선사의 시간표를 참고로 극히 주관적으로 제작하였으므로 자료의 정확성을 절대 담보 할 수 없으며, 해상의 기상과 각선사의 선박 운항사정에 따라서 변경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주지하시고 이용바랍니다.

한편, 해상특보(풍랑주의보, 경보)가 발효되거나 시정1km 이내로 안개가 발생하면 전면적으로 여객선 운항통제로 우리지역 여객선이 결항되거나 기상 상황에 따라서 운항시간표가 탄력적으로 변경 될 수 있음을 이해 바라며, 운항 및 통제되는 여객선 안전운항관리업무에 대해서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목포운항관리센터에 문의 바랍니다.

도서여객선을 이용하는 여객은 평소에도 알아 둘 사항으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고 출항 10분 전에 목포항 터미널 또는 팽목항 터미널에 도착하여 승선권을 구매해야 하며, 차량이용시 승선대기행열이 기존도로에서 항만매립지로 변경되었으므로 목적지 차선에 순번대로 차량을 위치하고 각선사의 매표소에서 문의를 하여 변동사항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도서여객선 섬사랑9호(서거차는 짝수날만 기항), 섬사랑10호, 섬사랑13호는 사전예약제(슬도, 탄항, 혈도,죽항, 각흘, 상하죽도, 곽도, 맹골죽도, 광대, 송도, 양덕, 주지, 소성남, 갈목, 신안 시하도)로 여객선 선장과 반드시 통화 하시고 기항 할것을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 해양수산부 목포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국가보조항로 섬사랑9호, 섬사랑10호, 섬사랑13호, 사전예약제(전화통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당일 기상상태나 선박·선사 사정에 따라 변동 될 수 있습니다.

전국 연안여객선 운항예보는 PC 및 모바일 홈페이지 접속 https://mtis.komsa.or.kr/mn/view 하시기 바랍니다.

제1회 ‘섬의날’ 을 축하합니다.

한국의섬( KOREAiSLAND.com )은 오는 8월 8일 국가 기념일로 제정된 제1회 ‘섬의날’을 축하 합니다.

오는 8월 15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서 개최되는 제74주년 광복절 기념 제73회 조도면민체육대회장에서 이하작가의 ‘보이콧 재팬’ 스티커 무료 나눔 포토 인증샷 이벤트로 준비하였으나 8월 8일 목포시 삼학도 썸페스티벌 행사장에서 먼저 스티커 나눔 해볼까 합니다.

<사전공지> 이하작가의 ‘보이콧 재팬’ 스티커 S.N.S인증샷 이벤트에 참여하는 분은 한국의섬 또는 한국의섬 S.N.S 리스트에 인증샷이 공유 될 수 있어 인증샷 거재를 허락하는 분에 한하여 참여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섬 http://KOREAiS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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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삼학도에서 ‘섬의 날’개최한다.

정부는 지난 2018년 3월 20일 도서개발촉진법 개정을 통해 무한한 발전가능성(∞=8)을 상징하는 매년 8월8일을 국가기념일’섬의날’로 지정하고 8월 8일~10일까지 목포 삼학도 일원에서 제1회‘섬의 날’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국가기념일 ‘섬의 날(Island Day)’은 대한민국 섬의 중요성과 가치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섬을 통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정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島嶼)로 한다.”여기서‘도’는 섬,‘서’는 작은 섬을 가리키며, 한반도와 그에 딸린 크고 작은 섬과 육지면적의 8배에 이르는 바다가 우리나라 영토·영해에 해당된다.

섬(島,island)은 바다, 호수, 강 등의 물에 둘러쌓여 있는 땅으로 바다의 경우 만조 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땅을 말하고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물과 나무 사람이 정착해 경제활동을 지속하느냐 따라서 유인도·무인도로 구분한다.

현재 유인도는 행정안전부, 무인도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고 있으며, 남한의 유인도는 제주도를 포함해 473개(2016년 기준), 무인도는 2,876개(2012년 기준)로 합하면 3,349개로 북한의 섬 1,045개를 더하면 대한민국의 섬은 4,394개가 된다.

섬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15만명으로 반면 섬 관광객은 659만명(2017년 기준)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섬의 65%를 차지하는 2,219개로 다도해(2016년 기준)를 이루고 섬에 대한 인식을 개선, 섬 여행 활성화에 전라남도가 적극나서고 있다.

섬의 날 기념 행사는 기존 단순 기념식 위주로 진행되는 국가 기념일과는 달리 섬 주민은 물론 일반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형 ‘썸 페스티벌(한여름 밤의 축제)’형식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첫날인 8일에는 개막식에 앞서 목포항과 삼학도 일대에서는 관광·축제가 결합한 섬의 날 행사를 위해 케이팝(K-POP)콘서트와 개막식을 시작으로 개막 기념 콘서트, 불꽃 쇼 등 여름밤 여행객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부대행사로 섬 주민이 참여하는 민속경연대회, 유명 스타 세프와 함께 하는 섬 푸드쇼, 오직 섬에서 맛 볼 수 있는 토속음식을 즐길 수 있는 너도(島) 나도(島) 페스티벌, 아름다운 섬과 자연을 주제로 한 뷰티풀 썸머 아일랜드 가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만남이 있는 섬 미래가 있는 섬’을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와 시속 220㎞로 바다를 가르는‘바다의 F1’파워 보트 대회, 묘기 수상 쇼, 버스킹공연, 관광객과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 섬 특산품 경매 등의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한편, 전라남도는 오는 8월 8일~10일 목포 삼학도 일원에서 열리는 제1회 섬의 날 사전 홍보를 위해 섬에서 인문학 엽서를 작성해 발송하는‘섬 소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섬 소환 이벤트’는 여수 낭도, 고흥 연홍도, 보성 장도, 강진 가우도, 완도 소안도와 생일도, 진도 관매도, 신안 반월박지도 등 전남의‘가고 싶은 섬’8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섬 인문학 엽서를 작성한 뒤 인증 사진을 남기면 된다.

한국의섬 독도를 말하다.

한국의섬은 올바른 섬의 정보를 제공하고 대한민국의 섬들을 올바로 홍보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곳이기에 전라남도 섬 위주로 홍보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대표 섬 독도와 대마도에 관심은 많으나 개인이 활동하기란 쉽지 않지만 독도는 한국의섬을 운영하는 목적중에 하나다.

그런전차로 독도에 관하여 전문가가 아니라서 국민으로 ‘독도’에 대하여 알아보면서 주장을 해본다.

먼저, 독도의 날은 2000년 8월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고종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하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한 1900년 10월 25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하였다.

그리고 2012년 10월 28일 국가해양부는 국가지명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동도의 봉우리를 우산봉, 서도의 봉우리를 대한봉이라 명명하였고, 바위로 분류되던 것은 탕건봉으로 재분류해 독도는 3개의 봉우리를 가진 섬이 되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본다면 1899년 울릉도의 산림 채벌권을 가진 러시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울릉도의 삼림을 벌채해 가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 달라고 외교 문서로 강력하게 항의해왔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금지함과 동시에 울릉도 이주민에 대한 행정 관리를 위해 1899년 5월 배계주를 울릉도 도감(島監)으로 재임명하여 파견했다.

또한 러시아측과 일본측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배계주와 함께 부산항 세무사로 근무하고 있던 외국인 세무사를 동행시켜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 실태를 조사 및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1899년 5~6월 당시 울릉도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불법 침투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울릉도의 삼림을 지속적으로 벌채하여 선박을 통해 일본으로 운반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곡식을 비롯한 각종 재화의 밀무역도 폭력적으로 자행하고 있었다.

울릉도 도감 배계주는 이와 같은 사실의 보고와 함께 울릉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일본인들에 대한 중앙 정부 차원의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보고받은 대한제국 정부는 주한 일본 공사를 불러 울릉도에 불법 밀입도한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은 물론, 밀무역을 자행한 죄과를 ‘조일수호조규’[1876] 약정에 의거 조사·징벌하여 그 폐단을 영구히 근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일본 공사는 이 경우 한국 관헌이 체포하여 가까운 일본 영사에게 넘기도록 되어 있다는 ‘조일수호조규’의 규정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근본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99년 12월 내무관리 우용정(禹用鼎)을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하여 일본 측과 제3국 외국인을 포함한 조사단을 파견하여 일본인의 불법 자행의 실태를 재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1900년 우용정(禹用鼎)을 그 대표격인 시찰위원으로 하고 감리서(監理署) 주사 김면수(金冕秀), 부산 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및 봉변(封辨) 김성원(金聲遠), 그리고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부영사관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正助] 및 경부(警部) 1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6월 1일부터 5일간 세무사 라포트의 입회 아래 그 실태를 조사하였다.

조사 이후 대한제국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행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제의 개정 및 격상을 단행하였다. 즉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1900년 10월 24일 강원도 울도군으로, 그리고 기존의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로 격상시키는 관제 개정을 단행하여 공표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도 역시 울도군 군수의 관할 하에 두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에는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하게 한 기록으로 ‘석도’는 돌로된 섬이라는 의미로 전라도에서 독도로 이주한 초기 이주민들이, 전라도 방언으로 돌을 ‘독’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기인하여 돌도가 지금의 ‘독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더 오래된 역사적 기록으로 삼국사기에는 512년(신라 지증와 13년)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한편, 독도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조경(潮境)수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해 다양한 어종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독도를 분쟁화 할려는 일본의 영토 침략행위의 목적으로는 해양영토의 야욕과 함께 해저에는 미래에너지 자원으로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형태로 고체화된 하이드레이트가 다량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런 독도의 가치를 안다면 시대의 악마족속인 일본 침략세력과 동급인 다까기마사오를 우상으로 모시는 곳에서는 독도를 말할 자격이 없으며, 일본의 앞잡이를 후손에게 자랑삼아 가르치는 꼴이니 통탄할일이다.

올바르지 않는 역사관으로 무장된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정상적인 나라가 될려면 박정희 팔이가 없어져야 하며 국내에서 먼저 독도의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서 일본에게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 할 수 있다고 본다.

영토 최후의 보루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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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 일본의 유령섬 또는 탄광섬으로 잘 알려진 군함섬(軍艦島)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군함섬’ 문화유산 등록 된 것에 대한 비판이 일자 참조 부분에 “조선인 강제노역”사실을 명시하기로 하였다 하며 “전방위적 외교 노력의 성과”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허나 전범국가인 일본의 자본에 외교부가 굴욕 당하고도 자화자찬을 하는 꼴이란 국민으로서 외교부 해명을 쉽게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고 그 곳에서 많은 학대와 죽임을 당한 곳이’군함섬’ 지금의 3분의1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여에 불과 했던 암초를 1897년(메이지 30년)에서 1931년(쇼와 6년)에 걸쳐 끌려간 한국인등 동아시아 강제징용자들의 강제노역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한편, 일본의 침략야욕의 사례로 태평양 한가운데 산호초만 무성한 우리나라 이어도와 같은 수중암초인 오키노토리시마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인공섬’을 만들어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일본 외교력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난사)군도 암초를 매립 해 부두와 공항등 군사시설까지 짓고 국제사회에서 버젓한 섬으로 인정받아 대륙붕 개발권을 인정받겠다는 속셈으로 영토분쟁에 관한 관점에서 이번 문화유산 등재 외교력으로 봐야 할것이다.

이에 따라서, 제주도 남쪽의 수중암초인 이어도를 인공섬으로 개발 해 국토로 정식 등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인접국과의 향후 영토분쟁을 감안 할 때 진지하게 검토 해 볼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와 다른문제로는 독도(獨島)가 일본의 외교력과 자본력으로 얼마든지 일본이 의도하는데로 분쟁지역을 만들고 소유권주장을 굽히지 않는 일본의 야욕이 이번 결과 처럼 독도에도 외교력이 적용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든다.

일본이 식민지화 위해 강화도에서 1904년 처음 침탈 한 곳이 독도와 같은 소외 된 섬들 이였으며 침략전쟁시 섬마다 등대를 세워 한 나라의 침략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부분이 섬인 것이다.

현재 200해리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가지고 영토 기준을 잡을때 중요한 것 뿐만아니라 본토의 방어선으로도 중요하고 완충지역으로도 자원의 보고 영토의 파수꾼 역할을 할수 있는 것이 ‘섬’인 것이다.

최근 중국 자본 점령과 미국 군사력의 집중이 자명한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동북아의 화약고가 멀지 않은 제주도와 더불어 동북아 화약고의 상징섬으로 ‘군함섬’이 세계인류문화유산 등재를 더불어 국제분쟁지역이 과속화 되고 있음을 상기 해 봐야 할것이다.

이번글은 독도(Dok-do.com)를 통해 우리나라 섬 그리고 내가 사는 섬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치욕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자조적인 입장에서 쓴글이다.

다도해 유구한 역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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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일면으로도 가장 많은 178개(유35개,무143개)로 이루어져 흔히‘새떼’처럼 섬이 흩여진 곳이라 조도(鳥島)이며,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름은 여러섬이란 뜻의 제도면(諸島面)이었으나 1895년 비로소 지금의 행정구역 이름인 조도면(鳥島面)로 변경되었다.

조도면 섬에서는 석기시대를 말하는 화살촉, 돌도끼를 비롯한 고인돌과 고려때 지석묘들도 발견되었지만 왜적과 해적들로 인하여 공도(空島)시기가 있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들이 섬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1598년)이후 1600년초로 족보를 통해 확인된다.

조도사람들이 서양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714년 조도사람들 9명이 표류하다 17일만에 일본 오끼나와에 표착했다가 중국을 통해 귀국한 9명에 대한 심문기록이 숙종실록, 1758년 대만 표류, 1899년 일본 표류등 표착하여 조도사람들의 외국 문물을 접하고 활발한 어업 활동을 했음을 가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편, 서양에서 조도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816년으로 200년전 영함(英艦)을 호위하던 호위함(리라호)의 바실홀(Basil Hal)함장의 왕실보고서에서 조선인들과 영국인들이 서로를 관찰한 것처럼 역사서가 후대에 전달되고 있는데 조도사람들의 생활상이 서양에는 조선의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섬지역이지만 조도지역이 서양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이유로는 1866년 천주교의 정착 동구리와 창리에 선교당으로 시작되었고, 1898년 목포산정동 초대 프랑스신부(도예)(1898~1909)가 판공성사 차 제주에 갔다 오다 풍랑으로 동구리 방문 이후 공소 개설함으로써 카톨릭 역사가 150년에 이른다.

최근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 처럼 대형해난 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1968년 병풍도에 부디쳐 우리나라에서 기름 해양유출 첫 피해지역으로 국제항로(매물수도)와 국내항로(맹골수도)가 있어 수많은 선박의 통항로로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빠른 해역이다.

지난 해난사고는 1947년 전복사고 7명사망, 1957년 채취선 14명 사망 나루선 15명 사망 전복사고, 1966년 6명 전복사고, 1973년 한성호 61명 사망 전복사고, 1978년 어선 3명 실종, 1980년 어선 3명 조난, 1988년 어선 1명 익사, 1990년 어선 4명 실종, 1996년 어선 3명 실종 등 해난사고 유난이 많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섬 독도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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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kdo movie click here ▲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 Republic of Korea to the beautiful island of Dokdo)

외교부 독도페이지 공개(2013.12.31)한 대한민국 땅 독도 동영상으로  다양한 언어로 제공 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의섬(dok-do.com)에서도 대한민국 외교부의 독도(dokdo)동영상을 링크로 배포 합니다.

외교부 독도 동영상은 독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과정,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 우리 독도 영토주권의 근거 등을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설명하고자 제작하였습니다.

이번에 외교부가 동영상을 직접 공개하게 된 이유는 일본이 지난해 10월16일‘여러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아십니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1분27초짜리 동영상을 외무성 홍보채널 명의로 미국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리고, 외무성 웹사이트 독도 관련 페이지를 링크하며, 동영상을 10개국 언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올릴 방침으로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것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외교부 사이트의 경우 제대로 된 영문 웹사이트도 갖추지 못한 채 한국어 웹페이지 내부에 영어로 된 PDF 파일만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의 영문 표기 중 하나인 ‘liancourt rocks(리앙쿠르암)’, ‘호넷(Hornet)이나 ‘dokdo(독도)’로는 구글이나 야후에서 외교부의 독도 관련 사이트가 검색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따라 유튜브를 통해 외교부가 공식 동영상을 직접 배포한것이다.

독도에 대한 유래를 본다면 옛날에는 우산도(于山島)·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 등으로 불렀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는데,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돌섬’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서 ‘돌’ 또는 ‘독팍’이라 하는데 전라도 남해안 출신 어부들이 풍선타고 독도어장을 하면서 울릉도에 이주민으로 입도하면서부터 독도를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으며, ‘독섬’을 한자로 음역하면서 ‘독도(獨島)’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본 정부가 이번주중 독도가 일본땅이라 주장하는 내용의 홈페이지를 개설 할 예정으로 다음달에는 영어판 홈페이지도 내놓을 예정으로 일본은 “한국이 하는 건 다 한다”는 식으로 국제이슈화를 목적으로 “국내외 세미나에서 영유권 홍보에 주력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한국의섬 독도(獨島)를 알아보자!

한국의섬 독도(獨島)를 알아보자!

독도(獨島)의 어원은 한자 표기대로 고종 때 주민들을 울릉도로 이주시킨후 그곳에 정착한 전라도 출신 어부들에 의해 전라도 말 ‘돍섬’ , ‘독섬’으로 불리다가 우리말‘독도’가 되고 한자표기로‘獨島’가 되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에는 한자로 石島(석도)로 적고 있다.  현재의 독도 지명은 1906년 심흥택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독도와 울릉도를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으로 불렸고 신라 때는 두 섬을 우산국으로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1770)와 『만기요람』(1808)에도 독도를 우산으로, 『성종실록』에는 독도가 삼봉도(三峰島)로 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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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동도와 서도를 비롯하여 89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고, 총면적은 187,554m2이며, 그중 동도가 73,297m2, 서도가 88,740m2, 그 외의 부속 도서를 합한 면적은 25,517m2이다. 독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서도 정상부로서 해발고도 168.5m이다. 동도의 최고봉은 98.6m이며, 맑은 날씨에 울릉도의 북동쪽 끝인 울릉군 북면 천부리 석포에서 독도가 관측이 된다.

그 모습은 동도와 서도가 붙어 있는 상태이며 서도의 북단에 솟은 탕건봉도 목측이 가능하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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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국가별 비행 영공을 식별하기 위한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설정에서 독도 상공을 인천비행정보구역(Incheon FIR)으로 규정하고 있다(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 일본은 후쿠오카 FIR, 북한은 평양 FIR로 규정하고 있다.

1951년 미 태평양 공군이 설정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독도와 DMZ를 포함하고 있고 미 공군에서 1987년에 발행된 항법지도에도 KADIZ 내에 독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69년 9월 방위청 훈령 제 36호(방공식별권 비행요령에 관한 훈령)에 의해 설정한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의 경우와 1972년 5월 오키나와 반환에 따라 JADIZ 범위를 확장할 때에 JADIZ에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 상공을 포함하여 설정된 KADIZ에 관하여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독도에 관한 한 그 상공을 인정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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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독도를 다르게 인식하게 된것은 식민지와 무역 확장, 자원 확보를 위해 서구의 많은 탐험선, 상선(商船), 군선(軍船) 등이 세계를 다니면서 새로운 섬이 발견되면 그들의 해도에 그 이름을 올린다. 그중 하나가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지면 그 이름이 채택된다. ‘리앙쿠르’ 명칭의 경우도, 1849년에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니 그들의 배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한 동해(East Sea)는 일찍이 고래가 많아 유럽인들은 조선해(Sea of Corea)와 함께 고래해(Sea of Whale)로 부르기도 했다.

일본 식민지배 전부터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를 일본의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츠시마’로 부르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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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타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일본해 내 다케시마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주- 다케시마 는 울릉도, 그 외 한 섬은 독도를 뜻함)’는 지령을 내렸다. 두 섬은 판도 외(版?外),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는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러일 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강제로 약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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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 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한 후 한성을 제압했다.

같은 달 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 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앙쿠르 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 ‘리앙쿠르 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 하여 타국령임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그것은 1905년 10월‘을사보호조약’식민지배와 함께 독도 침탈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독도(獨島)는 역사(歷史)적으로, 지리(地理)적으로, 국제법(國際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독도의 생태학적 특징으로는 해상에서 만조 시에도 늘 물 위로 드러나는 바위나 암초, 섬 등에 대하여 영유 국가에서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이 국제적인 공식 이름이 된다. 따라서 외국이나 국제 사회에서 독도 외에 어떠한 공식적인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과거 우리의 역사적인 기록에는 물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의 역사 기록(지도와 문헌)과 공식적인 국가 기록에도 독도는 조선(한국)의 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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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독도(돍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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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문헌에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조선 성종 때에는 ‘삼봉도(三峰島)’라고 하였고, 정종 때에는 ‘가지도(可支島)’라고 하였고, 울릉도 주민들은 ‘독섬’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1881년 이후에는 ‘석도(石島)’나 ‘독도(獨島)’ 등으로 불렀다.

이것을 프랑스에서는 항해한 배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Liancourt)’, 영국에서는 ‘호넷(Hornet)’으로 부르며, 해도에 표기하고 있다.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러 · 일 전쟁 통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개칭하고 일본 시마네 현에 소속시켰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의 나이 드신 어른들은 독도를 ‘독섬’이라고 부른다. 즉 ‘돌섬’이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돌의 경상도, 전라도 방언은 ‘독(石)’으로 되어 있고, 중세국어에는 ‘돍’이었다. ‘도(島)’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셤’으로 표기하였다, 그래서 ‘독도’는 돍셤 〉 돍섬 〉 독섬으로 음운 변화를 하였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엉뚱하게 ‘독도(獨島)’가 되었다.

한편, 일본 사람들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로, ‘독도’를 ‘송도(松島, 마쓰시마)’로도 불렀다. 아마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아서, 독도에는 소나무가 있어서 그러한 명칭을 만들어 썼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명칭에서도 혼란에 빠졌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다케시마 명칭은 울릉도 사람들이 부르는 독섬을 (takesima)로 음사하였고 이것을 죽도(竹島)라고 표기한 것이다.